자연속에 묻힌 외곬 인생

2015. 10. 29. 16:43韓國의 식물/가을 AUTUMN

 

 *동아사이언스 1991년 03월호 (1세대)생태사진가들이 어려웠던 생태사진 활동 기사를

 산에들에」회원에게 도움이 되었으면 하고 옮겨둡니다.  *옮긴이: 백 영 웅

 자연속에 묻힌 외곬 인생 

생태사진 찍는 작가들 1991년 03월호  

자연이 살아서 숨쉬는 모습을 사진에 담아내 생명에 대한 이해를 높이고

자연을 사랑하는 마음을 일궈내는 생태사진가들의 세계를 찾아가 보자.

 

   개울가와 저수지 주변에 서식하는 물총새는 물가 흙벼랑에 구멍을 뚫고 들어가 알을 낳고 새끼를 기른다. 어미새가 물다 준 민물고기를 맛있게 발라 먹고 토해낸 민물고기뼈를 바닥에 깔아 밑에서 올라오는 습기를 방지한다. 출입구에는 고약한 냄새를 풍기는 분비물을 뿌려놓아 무단침입자를 통제한다. 마치 똥으로 입구를 범벅해놓듯이. 또한 새끼들은 어미가

  특유의 소리를 내기 전에는 절대로 주둥이를 벌리고 먹이를 받아먹지 않는다. 적인지 어미인지를 분간하는 암호가 정해져 있는 것이다.

 생태사진가 김수만씨(32)는 일주일 동안을 고생해 물총새의 땅속 생활을 사진으로 담았다. 새집 입구와는 다른 방향에서 굴을 뚫고 4m 나 파고 들어가 어미새가 새끼 기르는 습성을 사진으로 기록했다. 굴을 파는 동안 바깥에서는 다른 한명이 워키토키를 들고 어미새의 출입을 체크해 알려줬다. 어미새가 들어오는 동안에는 굴을 파는 행동을 중지하고 숨을 죽여야 했다.

물총새의 땅속생활이 담긴 생태사진에는 새끼들이 토해낸 물고기 가시들이 하얗게 널려 있었으며, 사진을 찍는 동안 새끼가 어미를 분간하는 암호가 '뾱'이 라는 아주 작은 소리임을 확인했다.

쌍살벌이라는 야생벌이 있다. 이 벌이 자식을 기르는 정성은 상상을 초월한다. 새끼집이 장마철에 비에 젖으면 빨판을 대고 습기를 빨아내 밖으로 뱉어낸다. 기온이 올라가면 날개를 부채로 활용해 새끼집에 부쳐댄다. 그래도 안되면 다른데서 물을 빨아다 새끼집에 뿌린다. 이런 일련의 과정을 생태사진가 이수영씨(37)는 사진으로 담았다. 엄청난 노력과 시간이 소요됐음은 물론이다.

    생활모습을 모두 사진에

산과 들 그리고 바다. 그 속에서 숨쉬며 살아가는 곤충 거미 새 물고기는 물론 각종 식물의 모습을 사진으로 담는 생태사진가들의 활약이 두드러지고 있다. 5,6년전까지만해도 취미삼아 꽃사진을 찍는 사람, 과학교재를 만들기 위해 바다사진을 슬라이드로 담는 몇사람을 제외하고는 생태사진을 전문으로 찍는 사람은 거의 없었다. 우리가 접하는 동식물사진은 전공학자들이 직접 서투른(?)

솜씨로 찍은 사진 일부와 외국의 사진을 복사한 것이 대부분. 어린이용 과학서적의 사진도 비싼 로얄티를 지급한 외국사진이 주류였다. 결국 어린이들은 우리 생태를 배우는 것이 아니라 외국사진을 통해 다른 나라 생태를 배우는 꼴이 된 셈이다.

불모지로만 여겨졌던 생태사진분야에 새로운 변화의 조짐이 보이기 시작한것은 3,4년 전. 이전까지 주제를 가리지 않고 사진을 찍던 작가들이, 곤충 거미 나비 해양생물 새 식물 꽃 등 자기 전공을 찾기 시작했고, 촬영대상 생태에 대한 지식이 쌓이면서 사진의 질이 급격히 좋아졌다. 막연히 생태를 찾아나서는 것이 아니라 미리 사전지식을 습득한뒤 나섰고, 그 결과 단순 개체 사진이 아닌 생활 모습이 생생하게 사진에 포착되기 시작했다. 글로는 도저히 설명할 수 없는 생체의 신비가 한장의 슬라이드에 표현됐고 생명에 대한 이해의 폭을 크게 넓힐 수 있는 자연의 파노라마가 카메라앞에 속속 모습을 드러냈다.

또한 개별적으로 사진을 찍던 이들은 정보 교환과 자신들의 권익을 보호하기 위해 동호인회등을 결성하기 시작했다. 단체를 통해 사진질을 높이기 위한 토론회 세미나 등을 개최하고, 일반 국민들의 자연생태에 대한 이해를 돕기위해 사진전을 열기도 하며 달력 엽서 등을 제작해 배포하기도 한다. 개중에는 생태사진 단행본을 출판한 사람도 있다.

    신종(新種)도 기대해볼만

바닷속을 훑으면서 해양생물의 모습을 카메라에 담는 이선명씨(35)는 6년 동안 무려 2만컷정도의 사진을 찍어 보관하고 있다. 고등학교 다닐 때부터 스킨 다이빙을 즐겼던 이씨는 바다속의 모습을 자신만 감상하기는 아깝다고 생각해 사진을 찍어보기로 했다. 80년대 중반 TV다큐멘터리로 방영됐던 '수중의 신비' '삼다도의 세계' '한국의 민물고기' 등의 제작을 도와주면서 사진작가로 변신을 시도했다.
"해양사진은 육상사진처럼 장기전을 펼수가 없어요. 20~30분 이상 체류가 불가능하고 렌즈나 필름을 교환해야 하므로 한정된 시간에 작품을 만들어야 하는 어려움이 따릅니다. 더구나 우리나라 바닷속은 어두워 시야가 한정되는 단점이 있습니다."
한번에 잠수할 때 보통 40㎏ 이상 되는 장비를 짊어지고 들어가기 때문에 체력의 밑받침 없이는 힘들다고 설명한다. 미국에서 직업잠수부가 받는 심해 잠수교육을 두번이나 받았던 것이 이씨의 큰 자산. 이선명씨가 우리나라 전지역을 돌아다니며 찍은 해양생물중 20~30%는 우리나라에서 아직 기록이 안된 미기록종이라고 한다.

이를 기록하려면 샘플이 있어야 하므로 사진과 함께 샘플도 채취하고 있다. 특히 패류 중에서 갯민숭달팽이류는 우리나라에 6종만이 기록돼 있으나, 이씨가 사진찍고 샘플링한 것만 40여종. 해양연구소 제종길연구원의 도움을 받아 기록하기 위한 작업을 진행중이다. 이중에서는 신종(新種)도 기대해볼만 하다는 것이 이씨의 설명이다.

요즘은 주로 담수어의 생태사진을 찍는데 주력하는 이선명씨는 물속이라는 평소와는 다른 장소에서 촬영하므로 목숨을 잃을 뻔한 경우도 있었다. 작년 가을 열목어 서식지인 강원도 홍천의 직소에서 밤에 송어를 촬영하는데, 폭포 와류에 휩쓸려 물귀신 일보 직전까지 간적이 있다. 겨울에 얼음을 깨고 밤에 들어가 촬영하는 경우(잉어)도 위험하기는 마찬가지.

"우리나라에는 극피동물이나 강장동물분야의 전공자가 거의없어 안타깝다"는 이씨는 "대학때는 영문학을 전공했지만 앞으로 생생한 현장경험을 바탕으로 대학원에 진학해 해양생물분야를 공부해보고 싶은 욕심도 생긴다"고 말했다. 자신이 찍고 있는 해양생물 사진만해도 해수어 담수어 패류 산호 해조류 등 분야가 너무 많다는 것이 이씨의 설명. 분야별로 생체의 외관이나 습관이 너무 다르므로 앞으로는 해양생물사진도 전문화가 필요하다고 역설한다. 예를들면 해수어는 몸이 너무 빨라 찍기가 어렵고, 담수어는 작아 마이크로 촬영을 해야한다. 또 패류는 바닥에 붙어서 분간이 쉽지 않으며, 해조류는 시기와 서식지별로

차이가 너무나 전문지식이 없이는 촬영이 불가능하다는 것.

자신의 '물속경험'을 바탕으로 수중사진연구회(회원20명)를 운영하고 있는 이선명씨는 "일본만해도 아이들이 수백종의 해양생물이 담긴 사진첩을 들고다니며 즐겨보는데, 우리나라 아이들은 먹는 생선 몇종류를 빼놓고는 물고기 이름 아는 것이 거의 없다"

고 안타까워 했다. 다행히 최근에 웅진출판사의 '한국의 생태'시리즈중 여덟권에 이씨가 찍은 사진이 게재될 예정이어서 조금은 위안이 된다고 한다. 앞으로 해수어도감 등 해양생물도감을 펴내는데 기여하고 싶은 것이 그의 소망.

     6개월 노동 6개월 촬영

 "똑같은 장소에 가도 계절에 따라 새종류가 다양한 것이 그렇게 흥미로울 수가 없었습니다."

김수만씨가 새를 쫓아다닌 것은 중학생이 되면서부터. 눈에 익힌 새를 학습도감에서 찾아보려해도 찾을 수가 없었다. 철새가 물려올때 신문에 잠깐씩 선보이는 사진이 고작이었다. 17살부터 본격적으로 새전문가를 찾아다녔다. 재야 조류학자 이정우씨로부터

어느 새는 어디에 살고 뭘 먹으며 어디에서 와서 어디로 가는가를 배웠다. 더불어 십자매와 잉꼬, 그리고 고금조 사육하는 법도 배웠다. 곧 이어 직접 새를 찍어 기록에 남겨야겠다는 욕심이 생겼다. 그러나 촬영장비를 갖추는 경비가 만만치 않았다. 카메라를 사기 위해 노동판에 뛰어들었다. 79년 카메라(10만원상당)한대를 구입하는 소기의 성과를 달성하고 이제는 사진을 배우러 다녔다.

책이 주로 선생이었지만 박용윤(당시 동아일보 출판사진부장)에게 망원렌즈사용법, 필름의 감도 등의 가르침을 받기도 했다. 그때부터 카메라 이외의 부대장비를 구입하러 다시 노동일을 시작해 6개월 노동, 6개월 촬영의 '1년 살이'를 되풀이 했다.

김수만씨가 10년동안 찍은 새사진은 2백종류에 1만여 컷. 배우는 과정에서 좋은 기자재를 못써서 수만장을 버린 것이 가슴아프다고 한다. 87년부터 고급렌즈(3백만원)를 사용해 찍은 사진을 중심으로 88년에는 사진전을 개최하기도 했으며 '자연속의 새'라는 사진중심의 책을 출판하기도 했다. 그외에도 경희대 윤무부교수와 공동으로 '한국의 새'를 펴냈다.

"여름철새나 텃새 등 우리나라에서 번식하는 새는 둥지에 들어가기 전에 반드시 거치는 경로가 있습니다. 예를들면 둥지 주위를 살필 수 있는 곳에 가 한번은 반드시 앉습니다. 이런 사전 지식 없이는 한장의 사진도 찍을 수 없습니다." 새의 생활사를 알아야만 사진이 가능하다는 김씨의 설명이다. 특히 우리나라 새는 사람을 심하게 경계하기 때문에 더욱 그러하다는 것. 일본에 갔을 때 보호구역안의 모든 새들이 10m 거리에서도 포즈를 취해주는 것을 보고 김씨는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우리나라 새는 1천m 밖에서도 경계 태새에 들어간다는 것. 1천m와 10m의 차이는 새를 보면 '돌부터 집는 문화'와 '먹이를 주는 문화'의 차이.

"동물들은 필요한 만큼만 먹이를 먹지 사람들처럼 쌓아놓고 먹거나 남이 먹지 못하도록 하지는 않습니다. 동물의 세계는 사재기도 없으며 투기도 없지요 '약육강식'은 먹고 살기 위해서 하는 것이지 쓸데없이 살생하는 경우는 거의 없습니다." 김씨가 10년 넘게 새사진을 찍으면서 나름대로 깨달은 철학이다.

촬영을 나갈때는 허름한 복장에 마치 야포와 같은 망원렌즈를 뒤에 걸고 다니므로 영락없이 간첩으로 몰리기 일쑤다. 더군다나 경기도 화천같은 군사지역에서 며칠씩 촬영 할 때는 수염까지 덥수룩해져 몇번씩 체포(?)당하기도 한다. 그러나 간간이 새를 좋아하는 군인을 만나면 새에 관한 1급 정보를 얻는 수도 있다. 1년이면 10개월 이상을 현장에서 새와 함께 생활하는 김수만씨는 직업이 새사진작가인 완벽한 프로라고 할 수 있다.
     

두루미의 사랑^일본에서는 새들이 10m 앞에까지 접근해도 사람을 두려워하기는커녕 오히려 포즈를 취해준다고. 두루미가 '사랑'하는 모습은 일본 북해도 자연보호구에서 김수만씨가 찍은 사진

      [두루미의 사랑] 일본에서는 새들이 10m 앞에까지 접근해도 사람을 두려워하기는커녕 오히려 포즈를 취해준다고. 두루미가 '사랑'하는 모습은 일본 북해도 자연보호구에서 김수만씨가 찍은 사진

 


    풀하나 밟을 수 없다

지난해 연말 현대백화점 무역센터점 미술관에서는 '백두산 고산식물 사진전'이 열려 좀참꽃 산용담 두메양귀비 등 80종의 식물사진이 선보였다. 이를 주최한 단체는 한국자생식물동호회. 현재 식물에 조예가 깊은 40여명의 정회원과 60여명의 준회원이 이 동호회에 가입하고 있다. 준회원이 정회원이 되려면 1년 이상 준회원으로 활동하면서 식물에 대한 소양을 쌓아야 한다. 정회원들의 직업은 각양각색. 식물학 교수를 비롯해 중고교 생물교사, 기자, 가정주부, 개인사업가, 농장주 등 다양하지만 이들의 식물에 대한 열정은 하나같이 똑같다.

     83년부터 본격적으로 활동을 시작한 자생식물동호회에서 기록매체로서 사진이 갖는 의미는 표본채집 못지 않게 중요하다. 따라

     서 최근에는 모든 회원이 식물탐사 때 카메라를 지참한다. 정기탐사(연7회)외에도 특별팀을 구성해 활동하기 때문에 열심히 하는

     사람은 1년에 20회 이상 현장을 찾는다. 초창기부터 활동한 김용현씨(47·자생식물동호회 부회장)는 우리나라 총식물 4천종류 중

     7백종류를 사진으로 기록했다. 개인사업을 하기 때문에 직장에 얽매인 사람보다는 자유스러운 김씨는 87년 7월에 공주군 청양면

     칠갑산에서 '점없는 털중나리' 신종을 발견, 동호회 고문인 이창복교수(서울대 명예교수)의 도움을 받아 학회에 등록했다. 이 식

     물은 '칠갑나리'로 명명됐고 학명(Lilium amabile Var. immaculatum T. Lee.)까지 획득했다.

     자생식물동호회 회장 이영주씨(48)는 "등산로 주변에는 사람 독 때문에 아주 질긴 것 외에는 자생식물이 제대로 살 수 없다. 몇년

     같이 활동해 식물 생태에 대한 지식이 쌓이면 풀하나도 밟을 수 없게 된다"며 "자연보호의 핵심은 자연생태에 대한 이해가 필수적"

     이라고 강조했다.

     미국 유럽 일본 등에는 수많은 아마추어 식물 분류학자들이 맹활약하고 있다. 취미삼아 관심을 갖기 시작해서 '둥굴레' 하나로 학

     위를 따는 사람도 있다. 그런데 우리는 특산 식물인 금강초롱의 학명 조차도 한말 일본 하나부사 공사의 이름을 딴 '하나부사야'

     (hanabusaya)로 등록돼 있는 실정. 구한말 선교사들이 채취해 가지고 간 식물표본이 프랑스 영국 미국 등에는 있지만 우리나라

     에서는 아직까지 확인이 안돼 향명(鄕名)은 없고 학명(學名)만 있는 종도 많다.

     자생식물동호회에서는 남벌로 개체수가 현저히 줄어든 '큰제비꼬깔'군락지(태백지역)를 발견해 환경연구원에 보호 요청해 놓고

     있다. 대관령의 '동미나리', 반월지역의 '깽깽이풀'등 멸종돼가는 식물은 사진기록과 더불어 채종해 번식시키기도 한다.
    

자생식물동호회에서는 1년에 10회 이상 식물탐사를 다닌다. 이때 기록매체인 사진기는 필수품. 옆사진은 경기도 디북의 산록에서 자라는 다년초 큰제비꼬깔. 이 식물은 남한에서 사라진 것으로 알려졌으나 89년 자생식물동호회에서 강원도 태백 근처의 군락지를 발견했다.

    자생식물동호회에서는 1년에 10회 이상 식물탐사를 다닌다. 이때 기록매체인 사진기는 필수품. 옆사진은 경기도 이북의 산록에

    서 자라는 다년초  큰제비꼬깔. 이 식물은 남한에서 사라진 것으로 알려졌으나 89년 자생식물동호회에서 강원도 태백 근처의 군

    락지를 발견했다.

 


     예술성도 추구

     치과의사인 임운경씨(57)는 꽃만을 전문으로 찍는 꽃사진 작가다. 60년대 개업 초기에는 폭포 사진을 찍었으나 고향산천(평남

     강서)에서 뛰놀며 관찰하던 꽃생각이 나 70년대 말부터 본격적으로 꽃사진에 뛰어들었다. 지금까지 국내 꽃 뿐만아니라 외국

     꽃까지 합쳐 1만종류 가까이 사진에 담았다. 특히 임운경씨는 '꽃의 영상'을 사진으로 표현하는데 주력해, 그의 작품은 예술성이

     뛰어나다는 평을 듣고 있다. 꽃의 색감을 통해 인간의 심정을 표현하는 셈. 그렇다고 생체(꽃)에 대한 지식을 소홀히 하는 것은

     아니다. 꽃사진은 풍경사진과는 성격이 다르기 때문에 사전지식과 세밀한 관찰 없이는 예술성을 갖추기 힘들다고 한다.

     임운경씨는 주위에서 본업과 취미가 바뀌었다는 소리를 많이 듣는다. 환자 진료 이상으로 꽃사진에 주력하기 때문이다. 국내는

     물론 안가본데가 없고 꽃 사진만을 찍기 위해 30여개국을 돌아다녔다.

     "혹독한 추위에도 얼음을 뚫고 올라오는 우리나라 봄꽃(복수초 앉음부채 아네모네 등)을 보면서 강인한 생명력을 느낀다"는

     임씨는 "열대지방의 화려한 꽃에서는 우리나라 꽃과는 전혀 다른 강렬한 느낌을 받는다"고 말한다.

     앞으로 10년 후에는 자신이 찍은 세계적인 꽃들을 바탕으로 식물분류학을 한번 해볼 생각도 있다는 임씨는 현재 한국꽃사진회를

     조직, 40여명의 회원들과 꽃사진 찍는 법과 꽃 공부를 함께 하고 있다.

     최근 야생화를 전문으로 찍고 있는 사진작가의 수는 부쩍 늘고 있다. 한국생태사진가협회 회장직을 맡고 있는 백영웅씨(47)

     도 야생화를 주종목으로 정하고 본격적으로 활동하고 있다. 국민서관 기획실에 근무하면서 월간 '자연과 어린이' 사진일을 맡

     았던 풍부한 경험이 큰 무기. 2천 여종 이상의 야생화를 필름에 담은 백씨는 젊었을 때 등산으로 친숙해진 산과의 교분을 야생화

     사진을 통해 더욱 두텁게 쌓고 있다. 꽃이 피기 시작 할 무렵 마라도의 '해국'에서부터 전국토를 훑어 올라오는 기분은 누구도 짐

     작하지 못한다. 초기에는 보이는 대로 찍고, 찍은 사진을 도감에서 확인했으나, 최근에는 문헌을 보고 식물을 찾아나서는 일이 많

     아졌다. 그만큼 많은 종을 찍어 이제는 희귀종에 주력한다는 얘기다. 백영웅씨는 각 분야별 사진작가들이 모여 결성된 생태사

    진작가협회의 책임을 맡아 매우 분주하다. 생태사진가협회에서는 공동사진전 및 공동탐사를 계획중이다.

    곤충과 결혼해라

     꽃이나 새 못지 않게 많은 사람들의 관심을 끄는 게 곤충이다. 세계적으로 70만종이 인간과 함께 공존하면서 지구생태계를 구성하

     고 있다. 6년전부터 교육용 자연사진을 찍어 단행본 백과사전 등에 공급했던 이수영씨(38)는 87년부터 곤충의 세계에 흠뻑 빠

     져 들었다. 최근에는 우리 주위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여치 사마귀 쇠똥구리 등 20 여가지를 골라 '탄생에서 죽음까지' 곤충 생애를

     압축해 사진으로 담고 있다.

    "곤충사진을 찍다보면 우선 곤충에 접근할 수 있는 방법론이 필요합니다. 그들의 습성을 제대로 알아야겠지요. 다음은 곤충과 '같

     이' 하려는 태도입니다. 예를 들어 곤충은 위에서 관찰하면 절대로 보이지 않습니다. 자세를 낮추고 같은 위치에서 봐야 모습을

     보여줍니다."생태에 대한 지식과 겸손한 태도가 동시에 갖추어지지 않으면 눈을 씻고 찾아 보아도 아무 것도 보이지 않는다는 이

     씨의 말이다.

    '황오색나비'가 우아하게 저녁식사하는 모습, '들자게거미'가 벌을 잡아먹는 모습, '장미가위벌'이 알을 낳기 위해 잎사귀를 정성

     스럽게 자르는 모습 등을 사진에 한장한장 기록할 때의 성취감에 매료돼, 이수영씨는 아직 결혼도 하지 못했다. 친구들과 이야기

     하다 "인간보다 곤충이 더 낫다"는 말을 자주 해 '곤충과 결혼할 놈'이라는 소리도 듣는다. 어머니가 자연 관련 출판사에서 근무하

     기 때문에 많은 도움을 받고 있다.

     이씨가 곤충직업사진가로 입문하면서 터득한 지혜는 '자연은 땀흘린 자, 친근한 자, 가까이 있는 자에게만이 본연의 모습을 보여

     준다'는 것. 농촌에 가서 거름을 뒤지는 등 엉뚱한 짓을 하면 처음에는 오해하지만, 자세히 설명해주면 호기심을 갖고 도와주는

     경우가 대부분이라고 한다. "어릴적 자연교과서에서 자주 등장하는, 시골길에서 쇠똥굴리는 왕쇠똥구리가 거의 멸종단계라 오지

     를 찾아도 만나기 힘들다"며 "요즘은 농약 때문에 친구(곤충)들이 점점 줄어든다"고 안타까움을 호소했다.
     이수영씨는 앞으로 곤충들의 세계를 행동 형태별, 즉 먹이먹는 모습, 탄생 모습, 짝짓기 모습, 겨울잠자는 모습 등으로 모아 곤충

     사진집을 출판할 계획을 세우고 있다.

     경기도 시흥 소래에서 농사지으면서 축산업을 하는 이원규씨(36)는 곤충중에서도 나비의 삶만을 집중적으로 추적하고 있다.

     남한에서 볼 수 있는 나비 2백여종 중 1백여종류를 사진에 담았다. 최근에는 나비목 8과에서 각각 두 종류를 선정해 알에서부터

     성충 나비가 되기까지 과정을 '사이클 사진'으로 기록하고 있다.

                                                                                                                                                                                                                                                                                                                                                                                                                                                                                                                                                                                                                                                                                                                                                                                                             
     우리는 흔히 꽃을 찾아 날아드는 호랑나비를 보면서 우아한 날개 모습에 잠시 시선을 뺏기는 정도지만 호랑나비의 일생을 알게되

     면 관심의 폭이 매우 넓어진다. 짝짓기가 끝난 호랑나비는 3일 후 알을 낳게 되는데 보통 열흘 동안 1백여개를 낳는다. 95% 가량

     부화하지만 성장과정에서 노린재에 다 잡아 먹히고 (90% 가까이), 또 번데기 상태에서도 새 먹이가 돼 성충이 되는 것은 고작 4,5

     마리에 불과하다. 이런 일련의 과정을 사진으로 담아보면 성충뿐만아니라 알에도 관심을 갖게돼 나비알의 다양함에 매료되기도

     한다. 부전나비알은 지름이 0.3㎜밖에 안되지만 호랑나비알은 9㎜로 제일 크다. 흰나비알은 방추형이고, 호랑나비알은 구형, 네발

     나비알은 계란형이다.

     이원규씨는 1년 농사지어서 카메라 한대 못사는 게 현실이지만, 국민학교 다니는 아들 딸들이 나비를 좋아하고, 지나가던 노인네

     로부터 "당신덕분에 60평생 처음으로 나비알 구경했다"는 소리를 들을 때의 기쁨 때문에 앞으로 계속 셔터를 눌러댈 작정이다. 집

     주위에다 워낙 꽃을 많이 심어놔 나비들이 이씨 집 주위로 한번 날아오면  한시간 이상은 체류한다.  일하다가도 아이들이 새로운

     종류의 나비가 날아들었다고 알려주면 부리나케 카메라를 들고 달려가곤 한다. 이씨는 나비 천적인 노린재 종류만 50여종을 따로

     카메라에 기록해 놓기도 했다.

    홍일점 거미 사진가

    한국 생태사진가협회에는 홍일점 사진작가가 하나 있다. 전정란씨(29)는 사진 작가라기 보다는 대학원에서 '무당거미의 변이

     에 관한 연구'로 석사학위를 받고 현재 박사과정(동국대 생물학과)에서 거미를 연구하고 있는 예비 학자다. 거미학자인 김주필박

     사(대영 EMI학원장, 서울대 강사)가 소장이며 재야 거미학자인 남궁준씨가 전문위원으로 있는 거미연구소(84년 9월 설립)에서

     일하며 거미연구의 대를 잇고 있다. 학부때는 생화학을 전공했지만 거미 연구소에서 근무하면서 전공을 바꿔 거미계통분류에 전

     력하고 있다.

     전씨가 사진을 찍기 시작한 것은 얼마되지 않았다. 무척추동물인 거미는 액침(알코올 이용)을 해 보관하는데, 그러다보면 색깔이

     변해 사진의 필요성을 느끼게 됐다. 늦게 시작하긴 했어도 워낙 거미에 대한 지식이 많아 시행착오를 줄일 수 있었다. 또한 거미연

     구소에서 경비를 대줘 다른 생태사진가들과는 다르게 '호강'하며 사진을 찍고 있는 셈이다. 올해안에 거미사진도감을 독자적으로

     출판할 욕심으로 열심히 거미를 좇고 있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거미에 대한 인상이 별로 좋지 못한 것 같아요. 지저분하고 소름끼치는 폐가와 거미줄을 연상시키고' 시꺼먼

     독거미가 공포의 상징처럼 돼있으니까요. 하지만 거미줄의 다양한 용도, 거미줄을 치는 방법, 거미줄을 내는 실젖의 역할 등을

     알아가다 보면 거미 세계가 사람사는 세상만큼 오묘하다는 것을 느낄 수 있어요. 실제로 우리나라 거미중에는 독을 내는 거미가

     하나도 없을 뿐더러 세계적으로도 두세종을 제외하고 독거미는 없습니다."

     색깔도 아름답고 모성애도 지극하고 삶의 모습도 지혜로운 것이 거미라고 거미 예찬론을 펼친다. 거미줄도 접시그물 둥근그물

     수평 그물 수직그물 등 다양한데 먹이(곤충)의 형태에 따라 그물 모양과 치는 방법이 다르다는 것. '납거미'란 놈은 수신사(受

     信絲)를 쳐놓고 먹이가 걸리면 진동신호를 받아 어슬렁거리며 먹이사냥을 나간다. '염낭거미'는 최고의 모성애를 발휘한다. 억

     새풀 등을 얽어서 집을 짓고 알을 낳는데 알에서 부화된 새끼가 영양분을 소진하면 어미몸을 바쳐 새끼의 먹이가 된다.

     거미줄은 먹이를 사냥하는데만 쓰는 것이 아니라 이동하는 데도 활용된다. 목표물을 향해 레이저를 발사하듯이 거미줄을 쏘고

     바람 방향을 따라 줄타듯이 이동한다. '거미'하면 '거미줄'을 연상하지만 거미중 40%는 거미줄을 치지않고 활발히 움직여 먹이

     를 사냥하는 배회성거미다. 이들은 특히 눈이 발달해(8개) 사진을 찍다보면 자동차가 헤드라이트를 켜고 있는 듯한 착각을 일으

     키기도 한다.

    "우리나라에는 참고할 서적이 별로 없으므로 생태사진가들 대부분은 일본서적에 의존합니다. 그런데 거미만해도 외형적으로 판

     단한 것을 현미경으로 자세히 살펴보면 종류가 다른 경우가 가끔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생태사진가들이 개체를 분류하거나

     책을 낼 때 전문가들의 도움이 필요합니다." 생태사진가들의 훌륭한 작품들이 더욱 빛을 보려면 전문분야 학자들과 협력해야 한

     다는 전씨의 말이다. 학자들도 생태사진가들의 생생한 기록을 중시해야 함은 물론이다. 거미연구소에서는 곧 학생 일반인을 대

     상으로 한국거미동호회를 발족시킬 예정이다. 활동내용은 사진 촬영이 중심이며 이를 위해 거미생태에 관한 교육도 곁들일 예정

     이다.

     생태사진가가 집단(?)으로 탄생할 가능성이 엿보이는 곳도 있다. 웅진출판사에서는 5개년 계획(89년 5월 시작)으로 80권 분량의

    '한국의 생태'를 펴낼 예정. 여기에는 개체생태와 군집생태(산 동굴 여름철새 등)가 철저히 우리 것으로 펼쳐질 예정인데, 사진 팀

     을 기존 생태사진작가와는 별도로 구성, 운영하고 있다. 사진학과를 졸업한 사람으로 사진 경력 5년 미만이 주축. 이들은 5년동안

     고정급을 받으면서 5,6개의 주제만을 갖고 집중적으로 촬영에 몰두하고 있다.
 

     웅진출판사 생태사진 개발부 김갑수차장은 "일종의 새로운 시도다. 기존 생태사진가들이 담당할 수 있는 영역도 한정되고 그 틀

     을 한번 벗어날 필요도 느꼈기 때문에  예전에 생태사진을 찍은 경험이 있는 사람과는 별도로 팀을 짰다"고 말했다. 이들에게는

     고정급 외에 모든 촬영경비를 지급하고 사진장비도 상당부분 새로 구입해줬다는 설명. 또한 5년 계약이 끝난 후에도 적기는 하지

     만 판매고의 0.7%를 인세로 지급할 예정이다.

     이런 호조건(?)속에서 이들이 전문 생태 사진가로 성장한다면, 우리나라 생태사진분야는 한번 비약이 이루어질 것으로 예상된다.

     그러나 한장의 생태사진은 어느날 갑자기 얻어지는 것이 아니고 생태에 대한 지속적인 공부와 자연과 같이 숨쉬려는 태도가 어우

     러져 철저한 프로정신이 밑받침돼야 하므로 하루아침에 훌륭한 생태사진가를 기대하는 것은 쉽지 않다. 현재까지 1년넘게 세월이

     지났지만 이들의 활동은 아직 미지수.

 

     

거미줄을 치지 않는 배회성거미인 꽃게거미. 원내는 홍일점 거미사진작가인 전정란씨

           거미줄을 치지 않는 배회성거미인 꽃게거미. 원내는 홍일점 거미사진작가인 전정란씨

 


     이제는 연출이 필요한 때

     70년대부터 교육용슬라이드 제작을 해온 사진작가 김정명씨(46)는 우리나라 생태사진 작가를 다음과 같이 진단했다. "우리 작

     가들은 아직 1세대입니다. 일본만해도 동식물 사진 찍는데 연출을 합니다. 우리는 마냥 숨어서 기다리는데, 그들은 꿀물을 뿌려

     놓는다든가, 육식먹이를 지나다니는 길에 던져 놓는 것은 물론 첨단센서를 장착한 자동카메라를 사용하기도 합니다. 이런 수준

     에 접근하려면 먼저 촬영대상에 대한 사전지식을 철저히 습득해야 하고 장비도 고급화해야 겠지요."

     현재 김정명씨는 교육매체 제작사인 미국의 '이미지 카'로부터 생태계의 미속특수촬영을 의뢰받아 놓고 있다. 미속특수촬영이란

     식물이 2,3개월동안 성장하는 과정을 20~30초내로 압축시켜 비디오로 표현하는 것. 예를들면 딸기가 싹이 터서 열매를 맺기 까지

     를 20초만에 움직이는 화면(비디오)으로 보여준다. 생태계 교재로는 최고봉이랄 수 있는 미속특수촬영은 정지사진을 찍는 기술이

     밑받침되지 않으면 불가능하다.

     질좋은 생태사진이 나오려면 프로생태사진가 못지 않게 아마추어들의 활약이 활성화돼야 한다는 것이 관련자들의 중론. 아마추

     는 자기 본래 직업이 있어 시간적 제약을 받으므로 어쩔 수 없이 분야를 세분해 들어갈 수밖에 없다. 새 사진을 전공한다는 것은

     불가능하고 백로면 백로, 갈매기면 갈매기와 같이 한종류만 좇다보면 오히려 더 좋은 결과를 낼 수 있다는 것. 미국이나 유럽 일

     본 등에서는 교사나 주부 등 아마추어들의 외곬이 성공하는 경우가 드물지 않다.

     생체에 대한 지식을 확보하려면 학자들과의 관계도 지금보다 더욱 긴밀해져야 할 것이다. 시행착오를 줄이고 깊이있는 지식을

     습득하기 위해서는 배우는 자세가 필요하다. 전공학자들 또한 쓸데없는 권위의식을 버리고 살아있는 현장기록을 중시하는 태도

     를 가져야 함은 물론이다.

     생태사진가. 자연의 살아 움직이는 모습을 사진에 담음으로써 생명에 대한 이해를 높이고 자연을 사랑할 수 있는 마음을 일궈내

     는 사람들. 그냥 지나치면 돌인지 콘크리트인지 모르지만 사진을 통해 자연물에 의미를 부여하는 작업을 수행하는 생태사진가들

     이 더욱 많아지고, 그들의 성과가 쌓이면 쌓일수록 우리의 자연에 대한 이해는 깊이를 더 해갈 것이다.

 

       [글] 김두희 기자

 

 

     *당시 (주)웅진출판사 생태사진 개발부 김갑수 차장은 현재 방송인으로 문화평론가로 활동하고 있다.